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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함께 있기로 약속한 연인이 있었다.
그녀는 생기 있는 미소를 품고 잠이 들어있고, 그는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미소에는 분명 온기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무력하게 관망하던 그는 그녀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달라며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조금씩 시들기 시작했다.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여긴 그는 그녀의 보존을 위해
마을에서 가장 신묘하다는 술가를 찾아가 물었다.
“그녀가 시들고 있습니다. 그녀와 영원히 공존할 수 있도록 주문을 걸어주세요.”
술가는 지긋이 눈을 감고 한참을 정적에 빠지다 입을 열었다.
“그런 주문은 없네.”
“그럼 다른 방법은 없나요?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태워 그 연기를 물에 섞어 그녀에게 마시게 하게. 그럼 그녀는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걸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어디에 있나요?”
술가는 빈정대듯 웃음을 숨기며
“그건 나도 알지 못하네. 만약 찾게 된다면 내게도 알려주게나 ”
그는 수소문 끝에 오래되었다는 나무를 찾아 모조리 태웠고, 그 연기를 물에 섞어 그녀의 식도로 넘겼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시들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존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낙심할 여유조차 없는 그는 마을에서 가장 신통한 약주부를 찾아가 물었다.
약주부가 말하길
“생명을 시들지 않게 해주는 약재가 있다고 들어본 적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도, 구하기가 어려워 가지고 있는 이가 없다네.”
“그 약재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나요?”
“생명이 없는 육지에 흐르는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보다 낮은 호수를 발견하게 될 걸세.
그 호수의 물을 모두 퍼내고 나면 신비한 흰색 가루가 나온다네. 그 가루를 그녀의 몸에 바르면 그녀는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거네”
그는 약주부가 알려준 생명이 없는 육지로 향했다.
그곳은 태양과 대지가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곳이었다.
한없이 강렬한 태양을 쫓다 보니 그를 제외한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불모지에 내디딘 그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듯 대지는 어느 때보다 뜨겁게 끓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항하듯 맹렬하게 나아갔고 마침내 호수를 발견하였다.
태양이 그를 엄징하여 온몸이 타들어 가도 쉬지 않고 호수의 물을 퍼냈다.
태양이 잠시 숨을 고를 때면 날카로운 한기가 그의 숨조차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그는 뭉근히 호수의 물을 퍼낼 뿐이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러 드디어 호수의 물을 전부 퍼내자 태양은 흰색 가루를 비춰주었다.
그는 가루를 채취해 황급히 그녀에게 돌아가 흰색 가루를 그녀의 몸에 발랐다.
그리고 다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녀와 영원히 함께 있게 해 주세요”
그러자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시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후 그녀의 몸은 더욱 말라가고 다시 시들기 시작했다.
그는 무한한 절망에 빠졌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한 선지자가 찾아와 물었다.
“왜 절망에 빠져 있습니까?”
“신이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그녀와 영원히 함께 있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선지자는 망설임 뒤에 말을 꺼냈다.
“만년 동안 녹지 않는 눈으로 덮인 산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아마 그곳이라면 그녀와 영원히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선지자의 말에 그는 마지막 희망을 갖고 그녀와 함께 만년설로 향했다.
만년설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마치 모든 것을 너그러이 품어 줄 듯한 설경 속에 갇히려 그의 발자국은 흘렸다.
매서운 찬바람에 그는 싸늘하게 얼어 갔고 더 이상 그에게 온기가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는 신에게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얇은 호흡으로 신에게 간곡히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발 그녀와 영원히 함께 있게 해주세요”
한참을 기도한 후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그 풍경은 설광속에 섞인 영원히 시들지 않는 얼어붙은 국화꽃이었다.
그는 감사기도를 올렸다. 그 후 마지막으로 그녀를 안고 이윽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그렇게 멈췄다. 그들은 더 이상 시들지 않았다.
이에 감동한 신은
그들이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만년만에 만년설을 녹여버렸다.
<만년설>캔버스에 아크릴물감, 촛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