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므 2020. 8. 14. 07:12

해거름에 들려줄 고결한 고백

찬란하게 빛 날 그날의 선율을 위해

그는 모든 젊음을 피아노와 맞바꾼다.

 

누지지도 그렇다고 메마르지 않게 빚어낸 가문비나무의 기운

아이의 첫걸음으로 그려내는 순백한 현의 떨림

둥지를 감싸는 어미 새의 품처럼 포근한 헤머

하늘로 떠오르던 날 공명을 기억하는 향판

 

하지만 석양은 새벽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광명을 경외하던 혜성은 온기를 버리고 잠을 청하러 떠났다.

 

그는 손길을 내려놓지 않는다.

향기로운 고삐를 거역하는 프레임

온기를 더듬거리며 선상을 지키는 건반

 

봄볕에 잠들다 봄석이 벗기고 봄빛으로 단장하던 사이

혜성은 백발의 호수가 되었고

까마귀는 수십 번 백로를 떠나보냈다.

 

발차를 알리는 종소리가 윤곽이 드러내자

그는 소란스럽게 의자를 내려치고 자신의 다리를 주물렀다.

거듭 어긋난 진동을 분쇄하고 치료하기를 반복하자

방황하던 성운은 완성된 음률을 증명하며 제자리에 안착하였다.

 

황혼이 잠들기 전 그가 마지막 정음을 마쳤을 때

혜성은 잊지 않고 그를 찾아와 주었다.

 

하지만 그는 연주하지 않았다.

 

환상이 현실을 마주치기 직전의 순간

 

그는 충분히 설레었다.

 

 

 

<100일 휴가 전날 밤>휴지에 구두약,연유,식용색소,아크릴